[21]산사를찾아서/산사탐방

[산사탐방] 경남산청(정취암) 가을산사의풍경

와룡산 2012. 10. 30. 12:55



정취암으로 가는길 지금 공사 중이다.

도로가 무너져 포크레인이 한창 공사중이다...



 



 




정취암은 산청군 소재지에서 동남방향으로 약10km 위치한 대성산(일명둔철산)의

기암절벽 사이에 자리한 사찰로 그 상서로운 기운이 가히 금강에 버금간다

하여 옛부터 소금강이라 일컬었다...



 



 




정취암은 산청군 소재지에서 동남 방향 약 10km에 위치한

 대성산(일명:둔철산)의 기암절벽 사이에 자리한 사찰로

그 상서로운 기운이 가히 금강에 버금한다 하여 옛부터 소금강이라 일컬었다.
신라 신문왕 6년(병술, 서기 686년)에 동해에서 장육금신(부처님)이

솟아올라 두 줄기 서광을 발하니 한줄기는 금강산을 비추고, 또 한줄기는 대성산을 비추었다.
이때 의상조사께서 두 줄기 서광을 쫓아 금강산에는 원통암을 세우고 대성산에는 정취사를 창건하였다.
정취암에서 북쪽으로 약 4km에 위치한 율곡사는 원효스님께서 창건하셨는데,

 정취사와 율곡사에 각기 주석하고 계시던 의상 스님과 원효스님께서는

 수시로 왕래하며 수행력을 서로 점검하고 탁마 수행한 일화들이 전해지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조선 중기의 기록에는 정취사로 사명이 기록되어 있는데

, 조선후기에서 구한말 사이에 조성된 불화에는 정취암으로 기록되어 있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취암 정취관음보살을 본존불로 봉안하고 있는 한국유일의 사찰이다.
신라 헌강왕 2년(무인, 858년) 굴산 범일선사가 낙산사에 봉안했던 정취보살상을

 고려 고종 41년(갑인, 1254년)에 명주성이 몽고병에 함락될 때

야별초 10인과 사노인 걸승이 땅속에 묻어 난을 무사히 피하게 되었다.
그 후 기림사 주지스님 각유선사가 이 정취보살상은 국가의 신보이니

어부(궁궐)에 모실 것을 왕에게 아뢰어 왕의 명을 받아 어 부에 모시게 되었다.
고려 공민왕 3년(갑오, 1354년)에 화경, 경신 두 거사가 정취사를 중건한 후 어부에

 봉안되어 있던 정취보살상을 정취사로 이운하여 봉안하게 되었다.

 정취사는 고려 공민왕의 개혁 의지를 실현하고 원나라와 이후의 명나라로부터

관섭을 극복하려는 개혁 세력의 주요한 거점이 되었는데,

 산청군에 전해지는 문가학과 정취암에 얽힌 설화는

당시 보수 세력과 개혁 세력간의 갈등을 설화로 각색 것으로 사료된다.


 



 




정취보살님

원통보전 뒷편 응진전 옆 바위 절벽 사이에 봉안된 석조 정취보살상은

신라불상을 재현하여 조성하였으며, 2004년 8월에 이곳에 봉안하였다.

정취보살님은 관세음보살의 화현이라고도 하나 화엄경입법계품에

선재동자가 구법수행하는 53선지식 중에 한분으로 중생들의 고통과 원하는바를

널리살펴 고통으로부터 빨리 벗어나 해탈에 이르게하는?[보문 속질행해탈]의원을 성취하신 보살님이다.

처음 정취암에 정취보살을 모시게된?

것은 고려 공민왕3년에 화경거사와 경신거사가 정취암을 중수한 후

왕실에 모셔져있던 정취보살상을 이곳에 모시게된 것에서 연유한다.



 



 



 




원통보전- 圓通寶殿
관세음보살을 봉안하는 전각의 이름.
다른 이름으로는 원통전, 관음전, 보타전 등으로도 명명하는 것으로서

 모두가 관세음보살을 봉안한 전각을 지칭한 다른 이름이다.
원통보전이란 이름은 관세음보살이 세수천안(눈이 천개 손이 천개)으로서

원통삼매에 들어 일체 모든 중생들의 소리와 모습을 동시에

 모두 듣고 보아 구원하므로 관세음보살의 묘용을 지칭하여 붙인 이름이다.
정취암 원통보전에는 주불로 정취관세음보살상이 봉안되어 있고,

 후불탱화로는 정취관음탱화, 동편에 신중탱화, 서편에 지장보살상지장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석조 산신상 봉안 연기문

정취암 삼성각 뒤 기암절벽의 세심대에 봉안한 석조산신님은 참으로 기이한 인연으로 봉안 되었다.
정취암에는 오랜 세월동안 매년 음력 3월 10일 부터 산신하강일인 3월 16일 까지 7일기도를 전통적으로 하고 있다.

 2008년 음력3월16일(2008년 4월21일)에 7일산신기도 회향날 조각을 한다는 처사님 한분이 찾아왔다.

사연인 즉 일년전(2007년 음3월 10일부터 16일 사이)꿈에 수차례 호랑이를 타고앉은

 산신님이 나타나서 [대성산]으로 모시라는 선몽을 받았단다.

 그래서 그곳이 어디인지도 모른체 꿈에 본 모습되로 수 개월 동안 화강석을 깍고

 다듬어 산신상을 조각을 했는데, 완성된 조각상이 약 2,5톤(2,500kg)이나 된다.
산신상을 조각해놓고 대성산이 어디인가 하고 전국을 찾아다녔단다.

그러던 중에 7일 산신기도를 회향하는 음력3월16일에 우연히 정취암까지

 와서보니 꿈에 선몽한 장소와 똑 같다면서 이곳이 산신님의 인연터인 것 같다며 정취암에 모시기를 원했다.

그말을 듣고 보니 참으로 기이하여 정취암에 모시기로 하였으나,

 당시에는 2,5톤이 넘는 석상을 삼성각 뒤편 절벽 세심대에 모실수 있는 입지조건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

 절에까지 운반해오는 것도 문제였으나 그 무게를 들어올릴 수 있는

 50톤이상 대형크레인이 절에까지 들어올 수 없었고,

대형헬리콥터를 이용하게 될 경우 건물지붕이 다날아간다며 그도 안된다 했다.

그래서 사찰 진입도를 절벽에 축을 쌓아 다시 개설하고,

가장 큰 포크레인으로 크레인을 앞뒤에서 끌어 당기며,

우여곡절을 격으며, 삼성각 뒤편 절벽의 세심대에 봉안하게 되었다.

정취암은 정취관세음보살을 본존불로 모신 유일의사찰이지만,

 또한 자손이 귀한 많은 분들이 산신기도를 하여 자손을 본 영험한 도량이다.
이제 거룩한 산신님을 세심대에 모셨으니,

중생들의 모든 업을 맑히고 바라는 소원 다 성취하는 귀의처가될 것이다.
산신님 봉안 인연공덕으로 원성취하여지이다.




응진전- 應眞殿
아라한을 봉안하는 전각의 이름.
다른 이름으로는 라한전(500라한, 16라한)이나 간혹 영산전 등으로 명명하는데,

가운데 주불은 석가모니불을 봉안하고 좌우에 16분 혹은

 500분의 아라한과를 증득한 부처님의 제자들을 차례로 배열하여 봉안한다.
응진이란 인간과 천상의 공양을 능히 받을 수 있는진리를 깨달은 이를 말한다.
응은 능응의 지(智)요, 진은 곧 소응의 이(理)이니 지로써 이에 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응진이라 한다.

정취암 응진전에는 주불로 석가모니불을 봉안하였고,

 28대 조사인 달마대사상16아라한상을봉안하고 있으며 라한탱화를 봉안하고 있다.



 



 




정취암 위 암능 구간에서는 너무나 조망이 트인다.

암능 위에서 바라본 조망은 시야가 확 트이고 조용한

 산사의 풍경과 앞에 보이는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  세심대로 오르면서 바라본 정취암 풍경...




세심대 위 암능에는 넓은 암능이 있고 돌탑이 보이고 앞으로 조망이 확트이고

정취암으로 오르는  도로도 보인다...



 



 



 



 



 




정취암 뒷쪽으로 대성산으로 오르는 등로가 잘 정비 되어 있다.

가파른 된비알이 이어지고 갈림길에서 우측 으로 가니

무명봉이 나타나고 돌탑이 있고 산불 감시초소도 보인다.

대성산(둔철산)정상부는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가야 된다.

산불 감시초소에서 보니 정상부에 정자가 설치 되어 있다...



 




다시 내려오면서 정취암을 지키고 있는 사자 개 너무 순둥이다.

사람을 보고도 놀라지도 않고 멀꾸러미 쳐다만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