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령지맥 산줄기 이어걷기 두번째(성은리고개~합수점)구간이다

이번 구간은 대체로 무난한 구간 이었으며 등로도 좋고 날씨도 춥지 않은 날이었다

그러나 후반부에 도심을 지나는 구간이어서 발바닥에 불이 난 기분 이었다

큰흔치고개에서 불악산까지는 날씨도 포근해서 많은 동네 사람들이 등산을 즐기고 있었다

평택시에는 많은 건물들이 세워지고 있고 한창 개발중 규모가 엄청 큰 도시로 변하고 있다

고덕교 이후 논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합수점(안성천/진위천) 근처에서 마무리 하였다...

 

◎산행지:경기 안성시/평택시(일원)

◎언제:2022.01.23일(일욜)

◎누구와:대구지맥클럽

◎산행거리:27.78km(오룩스맵)

◎산행시간:07시간00분

◆주요산행기점시간

☞성은리고개:07시10분

☞x235.2(백련봉):07시51분

☞산하리고개:08시33분

☞몽골고개:09시14분

☞x168.3봉(부엉바위):09시14분

☞차돌고개:09시43분

☞x164.0(덕암산):09시48분

☞번터고개:09시59분

☞x162.9봉:10시14분

☞큰흔치고개:10시31분

☞작은흔치고개:10시59분

☞x149.4(불악산):11시13분

☞정자(삼각점):11시20분

☞동령마을:11시41분

☞돌우물고개:11시58분

☞x89.5봉:12시11분

☞지제교차로:13시41분

☞고덕교:13시44분

☞합수점(안성천/진위천):14시11분

 

△  (07:10)  경기 안성시 원곡면 성은리와 양성면 동항리를 잇는 23번도로에서 쌍령지맥 두번째 이어 갑니다

날씨는 포근하고 이제 해가 길어져 어둠이 살짝 있고 해서 헤드렌턴을 사용 합니다

들머리 도로 직선화 공사중이어서 절개지로 힘겹게 오른다...

 

안성시

 

쪽은 이천시·충청북도 음성군, 서쪽은 용인시·평택시, 남쪽은 충청남도 천안시·충청북도 진천군,

그리고 북쪽은 용인시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7°06′∼127°31′, 북위 36°53′∼37°09′에 위치한다.

면적은 553.41㎢이고, 인구는 18만 199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1개 면, 3개 행정동(33개 법정동), 415개 행정리(158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경기도 안성시 봉산동에 있다.

차령산맥의 말단에 위치하고 있어 동북쪽에는 400∼500m의 높은 산이 솟아 있고,

서남쪽에는 100∼200m의 낮은 구릉이 나타나고 있다.

동쪽에는 마옥산(磨玉山, 445m)·묘룡산(妙龍山, 174m)·마이산(馬耳山, 472m)·황색골산(353m)·

덕성산(德成山, 521m)·서운산(瑞雲山, 547m) 등이 이천시·충청북도 음성군·진천군과,

서쪽에는 묘봉(妙峰, 229m)·신선봉(神仙峰, 308m)·덕암산(德巖山, 165m)이 용인시·평택시와 경계를 이루고,

북쪽에는 쌍령산(雙嶺山, 491m)·경수산(331m)·딸기봉(415m) 등이 용인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북부 산록지대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안성천(安城川)은 도중에 한천(漢川)을 합류하고

서북부에서 발원하는 도곡천·도량천은 남진하면서 한천에 합류한다.

고남저수지에서 발원하는 한천은 남서진하는 안성천과 합류한다.

군의 중북부에서 발원하는 모두천·기술천 등이 안성천에 합류하고

남부의 금광저수지의 물과 청중천은 서진하면서 안성천과 합류하고 있다.

그리고 안성천은 황구지천(黃口池川)·청룡천(靑龍川)과 합치면서 천안으로 들어간다.

이들 하천은 하천지역에 넓은 충적 평야인 안성평야를 만들고 있다.

동북부에는 청미천이 흐르는데 하천 주변에는 죽산분지가 발달하고 있다.

지질은 화강암과 화강편마암으로 되어 있다.

기후는 대륙성기후에 속한다.

연평균 기온은 11.5℃, 1월 평균기온 -4.9℃, 8월 평균기온 26.6℃이며, 연 강수량은 1,200㎜ 내외이다.

 

평택시

 

대한민국 경기도 서남단에 있는 시. 1995년 평택시·평택군·송탄시가 하나로 통합되어 평택시가 되었다.

경기미의 본고장으로 넓고 비옥한 평야지대를 이루어 농업개발사업의 중심지역이 되었다.

또한 서울에서 1시간 거리인 교통의 요지로서 조선시대부터 뱃길이 뚫린 삼도의 요충지라고 불렸으며

6·25전쟁 이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서정동과 신장동을 중심으로 상업·위락 도시로 발전했다.

행정구역 안중읍·포승읍·팽성읍·청북읍, 진위면·서탄면·고덕면·오성면·현덕면, 중앙동·

송탄동·송북동·서정동·지산동·신장1동·신장2동·비전1동·비전2동·

신평동·원평동·통복동·세교동 등 4개읍 5개면 13개동이 있다

(행정동 기준, 법정동 기준은 27개). 시청소재지는 경기도 평택시 경기대로 245이다.

면적 458.12㎢, 인구 534,343(2020).

평택시 지역 대부분은 옛 진위현·양성현의 남부였으며, 옛 평택현의 일부가 포함되어 이루어진 곳이다.

옛 진위현은 삼국시대에 백제(또는 고구려라고도 함)의 송촌활달(松村活達)·부산현(釜山縣 또는 古淵達部曲)이었다.

757년(경덕왕 16)에 진위현(振威縣)으로 개칭되었으며, 조선시대에 진위현은 경기도 소속이었다.

옛 평택현은 본래 백제의 하팔현(河八縣)으로, 757년에 평택현으로 개칭되었으며,

조선초인 1413년(태종 13)에 충청도 평택현이 되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진위현과 평택현은 군이 되어 공주부에 소속되었다가

1896년에 진위현은 경기도에, 평택현은 충청남도에 소속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진위군은 수원군의 15개면과 충청남도 평택군 전역을 병합하여 면적이 크게 확대되었다.

이때 진위군의 성남면·병파면이 통합된 병남면이 1926년에 평택면으로 개칭되었다.

1938년에 진위군을 평택군으로 개칭함으로써 평택군이 진위군의 이름을 대신하게 되었다.

1939년에 평택면, 1963년에 송탄면, 1977년에 팽성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에 안성군 원곡면의 4개리와 공도면의 소사리가 평택읍으로 편입되어 동부와 동북부가 확장되었다.

1981년에 송탄읍이, 1986년에 평택읍이 각각 시로 승격되어 평택군에서 분리되었다.

1989년에는 안중출장소의 관할지역 일부가 안중면으로 승격되었다.

1995년 4월 진위면 갈곶리·고현리·청호리 일부가 오산시에 편입되었다.

같은 해 5월에는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전통적인 농업지역이던

평택군과 시가지로 발전해왔던 평택시·송탄시가 다시 하나로 통합되어 새로운 도농통합 형태의 평택시를 이루었다.

1996년 동부동의 명칭이 송탄동으로 변경되었다.

1998년 도원동이 송탄동에 병합되었다.

2002년 안중면을 안중읍으로, 2006년에는 포승면을 포승읍으로 승격했다.

2016년 7월에는 청북면을 청북읍으로 승격하면서, 4개읍 5개면 13개동을 관할하여 지금에 이른다

 

 

△  능선에 오르니 좌측으로 안성시 양성면 동항리 방향으로 불빛이 비추고 동녁 하늘로 붉게 물들어 온다

그러나 하늘에는 구름이 많은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이다

건너편 천덕산 정상에도 군부대 가로등이 빛나고 있다...

 

△  약간의 잡목 구간의 지나니 만세고개에서 오르는 등로를 만나고 등로도 이제 좋다

우측 나무 계단으로 오르고 계속 약간의 고도를 올리면서 등로는 이어진다...

 

△  된비알을 오르니 안전기둥도 보이고 무명봉에 오르니 쉼터 의자도 보이고...

 

△  두번째 무명봉에 오르니 여기도 쉼터 의자도 보이고 지맥길은 우측으로 휘어서 내려서고...

 

△  내리막에는 데크나무 계단도 이어지고 이제 조금씩 날이 밝아 오고 있다...

 

△  (07:38)  돌무더기가 있는 안부에 내려서고 비법사 갈림길이고 서낭당 고개 입니다

반바지님이 성은고개라고 하며 코팅된 표지기가 나무에 달려 있다

경기 안성시 원곡면 칠곡리와 성은리를 잇는 고개 안부다...

 

△  안부를 지나 한고비 치고 오르고 우측 나무 사이로 성은저수지도 보이고...

 

△  무명봉에 오르니 평상도 보이고 간언 최만리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최만리(?~1445)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자명(子明), 호는 강호산인(江湖散人). 고려시대 해동공자로 불리던 최충(崔沖)의

12대손이며 하(荷)의 아들이다.

최만리(崔萬理, ? ~ 1445년 10월 23일)는 조선 전기의 문신, 정치인, 유학자이자 철학자, 법학자이다.

조선시대의 청백리로 꼽히는 인물이다. 오랫동안 집현전에 몸을 담고 고제(古制) 연구 및 적용에 주력했으며

집현전 부제학, 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419년(세종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그 이듬해 집현전박사로 임명되었다.

그 뒤 집현전학사를 거쳐 그 실무책임자인 부제학에까지 올랐다.

개괄적인 관력을 보면, 1427년 3월 교리로서 문과중시에 급제하였고,

그 해 7월에 응교에 올랐으며, 1437년 직제학, 1438년 부제학, 1439년 강원도관찰사,

1440년 집현전부제학으로 복귀하였다.

그 뒤 1444년에 훈민정음창제에 대한 반대상소문제로 즉일 친국을 받고 다음날 석방, 복직되었으나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여생을 마쳤다.

부정과 타협을 모르는 깨끗한 관원으로서 일관하였으며 진퇴가 뚜렷하였다.

그는 집현전의 실무책임자인 부제학으로서 14차에 걸쳐 상소를 올렸다.

그 중 불교배척 상소가 6회, 첨사원(詹事院) 설치반대상소가 3회로서 그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밖에 일본과의 교역에서 석류황(石硫黃)의 대가를 지나치게 후하게 지불한 것에 대한 책임추궁,

진사시에서 시(詩)의 출제법이 잘못됨을 지적한 것, 그리고 이적(李迹)의 사형결정이 모호하다고

감형을 주장한 것과 사직상소 및 한글반대상소가 있다.

불교배척상소의 대부분은 흥천사(興天寺)의 사리각 중수 및 경찬회(慶讚會)의 혁파를 청하는 것이었고,

첨사원 설치를 반대한 상소는 세종이 건강상의 이유로 세자에게 섭정시키려 하므로

이를 적극적으로 반대한 것이었다.

그는 훈민정음이 완성될 때까지 세종의 뜻을 잘 받들어 반대한 일이 없었다.

그런데 세종은 훈민정음을 완성하고 비밀리에 궁중의 의사청(議事廳)에 최항(崔恒) 이하 집현전

소장학사와 동궁·진평대군(晋平大君) 등을 참가시켜 원나라의 웅충(熊忠)이 엮은

≪고금운회거요 古今韻會擧要≫의 자음을 한글로 달아 일대 자음의 개변운동을 하려 하였다.

세종은 당시 우리나라의 한자음이 체계 없이 사용되는 것이어서 어느 정도 중국체계에 맞도록

새 운서를 편찬하여 당시 한자음을 개혁하려고 한 것이었다.

이에 그는 집현전의 중진학자들과 함께 상소문을 올렸는데, 이것이 유명한 한글반대상소문이었다.

이 상소문은 여러 학사의 합작으로 보이며, 조목에 따라서는 한글창제의 불필요성,

한글의 무용론을 주장한 것으로 사대주의적 성향이 짙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진의는 세종의 한자음 개혁에 반대한 것이 된다.

즉, 세종의 최만리에 대한 친국내용을 보면, “내가 만일 이 운서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누가 바로잡을 것이냐.”라고 한 것을 보면 최만리 등의 상소는

≪고금운회거요≫의 번역사업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고금운회거요≫의 번역사업은 뒤에 ≪동국정운≫의 사업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중국에서 ≪홍무정운 洪武正韻≫이 실패작이었던 것과 같이 우리의

≪동국정운≫도 그 한자음이 실시될 수 없어 결국 실패로 돌아간 것이라고 한다면,

그의 ≪고금운회거요≫ 번역사업의 반대상소 견해는 그러한 의미에서 정당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상소문의 내용이 사대주의라고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당시 지배층이 일반적으로

사대주의적 경향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에 대한 평가는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청백리에 녹선되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가야할 오늘 구간 최고봉 백련봉이 저만치 보이고...

 

△  우측으로 성은저수지 갈림길도 지나고 계속 등로는 무척 좋다...

 

△  백련봉으로 제법 치고 오르고 데크 계단 안전 기둥도 보이고 약간 까칠한 곳이다

그러나 그리 얼마 되지 않아서 최고봉에 오를수가 있다...

 

 

 

△  (07:51)  구간 최고봉 x235.2(백련봉)에 오르고 준희님 산패도 보이고 작은 백련봉 표지판도 보인다

날씨도 포근해서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 송글 맺히고 개인 단체 사진 남긴다

오늘 두명이 빠져서 6명이 오붓하게 산행을 하게 되었다

문신 최규서를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최규서(1650~1735)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문숙(文叔), 호는 간재(艮齋)·소릉(少陵)·파릉(巴陵). 광주(廣州) 출신.

삼당시인으로 꼽히는 최경창(崔慶昌)의 현손이며, 최집(崔潗)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최진해(崔振海)이고,

아버지는 현감 최석영(崔碩英)이다.

1669년(현종 10) 진사시에 합격하고, 1680년(숙종 6)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출사하였다.

이 때 서인의 나문에서 뛰어난 재주로 시명(時名)을 얻어 언관이 되었다.

정언으로 있을 때 “서북인을 통청(通淸)하라.”는 왕의 하교에 맞서 “인문(人文)이 황폐하고

가합자(可合者)가 없다.”는 논지로 소를 올려 논객(論客)의 면모를 보였다.

또한, 서인이 노소로 갈라졌을 때 나양좌(羅良佐)를 옹호하는 등 소론에 가담하였다.

1685년 지평에 올랐고, 이어 이조좌랑·수찬 등을 역임하였다.

이 때도 최석정(崔錫鼎)의 파직을 변호하는 등 소론의 소장으로 활약하였다.

1689년 대사간에 올랐는데, 이 때 남인에 맞서 희빈 장씨(嬉嬪張氏)의 책봉을 반대하는 데에 앞장 섰다.

그 뒤 1694년 외직으로 전라도관찰사로 나갔으며, 이어 강화유수를 역임하였다.

주청부사(奏請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오기도 하면서 부제학, 형조·예조 판서, 대제학 등 현직(顯職)을 누렸다.

1711년 소론의 최석정 등이 삭탈관작되고, 1716년 병신처분(丙申處分)으로 소론이 실세를 거듭하자

지중추부사 등의 관직을 사퇴하고 고향 광주(廣州)로 내려가 여생을 마치려하였다.

이 때 많은 사직소를 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1721년(경종 1) 소론이 득세하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이 되었고, 1723년에는 영의정에 올랐다.

이 무렵 노론들이 연잉군(延礽君: 뒤의 영조)의 대리청정 등을 추진할 때 이에 맞서는 등

소론정권의 주역을 맡았으나, 강경파 김일경(金一鏡) 등이 신임사화를 일으킬 때는 완소(緩少)로 온건하게 대처하였다.

이어 치사(致仕)를 빌어 봉조하(奉朝賀)를 받고 일선에서 물러나 성묘를 핑계대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1724년(영조 즉위년) 영조가 즉위하여 노론이 집권했을 때에도 무사하였다.

1728년 무신난(戊申亂)이 일어날 때, 용인에 있으면서 이 정보를 입수하고는

80세의 노구를 이끌고 제일 먼저 조정으로 달려와 이를 알린 다음,

‘역정포고의(逆情布告議)’라는 토난책(討難策)을 건의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원옥(寃獄)이 없을 것을 당부, 완소계열을 보호하려고 하였다.

난이 평정된 뒤 ‘일사부정(一絲扶鼎)’이라는 영조의 어필이 내려졌고,

이어 공신에 녹훈하려고 하자 이를 끝까지 거절하였다.

당인(黨人)의 중심 인물이었으나 온건하게 대처하였다.

또 지방관으로 나갔을 때에는 많은 선정을 베풀었다.

특히, 전라감사로 있을 때 선정으로 이름나 사람들이 부서한(簿書閑: 관청 문서가 한가함.),

공방한(工房閑: 아전들이 한가함.), 기악한(妓樂閑: 기생·풍악이 한가함.)의

‘삼한(三閑)’이라 했다 한다.

영조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시문집으로 『간재집』 15권이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청원사를 알리는 안내판도 보이고 은근히 역사 공부를 하게 된다...

 

청원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창건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나 삼국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하며, 사찰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병자호란 때 의병 1,000명이 구사일생으로 생명을 구하게 되어 산 이름을 천덕산이라 고쳐 부르고,

산골짜기 언덕 안으로 푸른 안개가 끼어 있었으므로 청원사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웅전의 건칠아미타여래좌상 복장(腹藏)에서는 총 9점의 사경본(寫經本)이 발견되었다.

그 중 감지은니보살선계경(紺紙銀泥菩薩善戒經 권8은 1280년(충렬왕 6)에 왕이 발원하여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사경한 것으로 보물 제740호로 지정되어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보관 중이고

, 1324년(충숙왕 11)에 사경한 감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주본(紺紙銀泥大方廣佛華嚴經周本)

권12, 40, 41과 감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정원본(紺紙銀泥大方廣佛華嚴經貞元本) 권16 등 2종 4점은

보물 제1795호 건칠아미타여래좌상복장전전(淸源寺 乾漆阿彌陀如來坐像腹藏典籍)으로 지정되어

용주사성보박물관에 보관중이다.

이를 통해 13세기에 있어서 이 절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으며, 당시는 ‘청원사(淸願寺)’로 불렀음도 알 수 있다.

1936년에 요사를 중수하였으며, 1975년에는 법당과 요사를 중수하였고,

1982년에 경내 석축공사를 마무리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산령각(山靈閣)·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정면 3칸, 측면 3칸의 대웅전은 조선시대의 건축물로서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4호이며,

대웅전 앞마당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6호로 지정된 높이 3.5m의 7층 석탑 1기가 있다.

층수에 비해서 규모가 작지만 체감률이 작은 옥신(屋身) 등이 여주 신륵사의 다층석탑과 유사하며

기단부의 조각이나 옥개석의 처마선은 공주 마곡사의 5층 석탑과 유사하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구름이 많아서 늦은 시간에 찬란한 아침해가 떠오르고 있고...

 

 

 

△  계속 등로는 크게 업.다운이 없이 이어지고 등로는 반질 반질 하고...

 

△  좌측으로 시야가 트이니 경기 안성시 원곡면 지문리 방향 뷰 전원주택지 상지문저수지도 보이고...

 

 

 

△  (08:33)  경기 안성시 원곡면 산하리와 지문리를 잇는 2차선도로인 산하리고개에 내려선다

도로를 건너서 데크계단으로 오르고 전주에 반바지님 산하리고개를 알리는 코팅지도 보인다

제법 오르막이지만 이내 끝나고 오늘 정말 산행 코스가 힘들지 않는 곳이다...

 

 

△  능선에 올라 좌측 나무사이로 드넓은 농토가 보이고 저멀리는 터를 고르고 있고...

 

△  페타이어들이 버티고 있는 무명봉도 지나고...

 

△  데크 계단을 내려섰다고 다시 오르고 등로는 잘 정비되어 있네요...

 

△  무명봉에 올라 내려서니 참호도 보이고...

 

△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니 묘지군이 나타나고 건너편에는 계단식으로 묘지터가 조성 되어 있다

햇빛이 잘 비추고 있으니 잔디들이 왕성하게 자란 흔적들이 보인다...

 

△  벌목한 곳을 지나고 나무 사이로 한국의 대동맥 경부고속도로 보이고 역시 차들이 많다

여기도 묘지를 조성 할려고 벌목을 하고 있는것처럼 보이네요...

 

△  도로에 내려서니 바로 고속도로 아래로 수로가 보이고 이방향으로 건넌다

마침 바닥에는 물이 없어서 건너기는 쉽고 물이 많으면 한참 돌아가야 할것 같다...

 

 

△  고속도로 수로를 건너서 도로를 다시 만나고 좌측으로 조금 지나서 전주가 있는 곳으로 오른다

숲으로 들어가니 좌측 배수로 방향길이 희미하여 우측 방향으로 희미한 길이 보인다

그래서 우측으로 해서 오르니 지맥길과 벗어나 숲으로 오르면 바로 좌측 배수로로 올라가야 할것 같다...

 

△  약간 우측으로 돌아서 오르니 이제 제법 넓은 수렛길을 만나서 좌측으로 진행하고...

 

△  고속도로 수로를 지나서 도로에서 숲으로 오르지 않고 도로를 계속 따라서 오르면 만나는 길이다

이쪽 방향으로 해서 오르는 선답자도 있고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갑니다...

 

△  파란 울타리가 있는 곳도 지나고 안에는 묘지들이 조성되어 있다

무명봉에 올라 내려서니 좌측으로도 많은 묘지들이 보인다...

 

 

△  등로는 편안하게 이어지고 있고 리키다 소나무들이 많이 보이고...

 

△  지름길이 있지만 좌측 능선으로 치고 올라 우측으로 휘어지면서 지맥길은 이어진다

지도상에는 무명봉 그러나 준희님 산패가 보이고 x123.4봉으로 되어 있다...

 

△  (09:14)  고개처럼 보이지 않고 나무에는 반바지님 몽골고개를 알리는 산패가 보이고...

 

△  부엉바위 갈림길 200m 떨어진 부엉바위에 갔다 오기로 합니다...

 

△  약간의 둔덕을 오르고 기암이 보이고 이것이 부엉바위인가...

 

△  (09:22)  돌탑이 있는 부엉바위에 오르고 사진 한장 남기고 되돌아 갑니다

선답자 사진에는 제법 큰 돌탑이 있던데 지금은 허물어져 있네요

아마 정교하게 쌓지 않아서 비바람에 무너진것 같네요...

 

△  데크계단을 내려서니 제법 뚜렷한 고개를 지나고 다시 데크 계단을 오르고...

 

△  군데군데 쉼터 의자도 보이고 등로는 정말 고속도로 수준이다...

 

△  (09:43)  경기 평택시 도일동과 안성시 원곡면 산하리를 잇는 차돌고개도 지난다

뚜렷한 고개이며 좌측으로 봉황사로 내려 갈수가 있다...

 

△  이제 갈림길 지름길이 많고 그러나 온전한 산줄기를 따라서 우측으로 오르고 덕암산 방향이다

야간의 된비알이 이어지지만 이내 끝나고 덕암산에 오르게 되네요...

 

 

△  (09:48)  4등삼각점이 있는 x164.0(덕암산)에 오르고 오늘 개인 단체사진 남긴다

정상석도 보이고 덕암산 유래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  우측 산줄기 근처에는 벌목한 흔적이 보이고 최근에 하여 나무 냄새가 솔솔 난다

경기 안성시 원곡면 산하리 방향 그너머 평택시 진위면 마산리 방향 뷰도 펼쳐지고...

 

 

△  오늘 은근히 지름길이 많고 그러나 우측 무명봉으로 오르고...

 

△  (09:59)  돌무더기 있는 번터고개에 내려서고 여기도 지름길이 있다

경기 평택시 도일동 안골마을과 안성시 원곡면 산하리를 잇는 고개이다

예전 많은 민초들이 애환이 서려있는 고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계속 이런 지름길이 수없이 반복되고 그래도 지맥 능선으로 오르고...

 

△  원균장군묘 갈림길도 지나고 여기도 우측에는 벌목 지나가지 못하게 끈이 쳐져 있다

등로가 많아서 옆으로 지나가는 등로가 있어서 지나 갑니다...

 

원균장군(1540~1597)

 

원균은 임진왜란 때는 경상우도 수군절도사로, 정유재란 때는 수군통제사로 왜군에 맞서 싸우다가 전사한 인물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개월 전에 경상우수사로 임명되었다.

부임지의 상황은 전선 7,8척에 수군의 기강도 해이해진 상황이어서 주변을 돌며 수군모집과 정비에 힘썼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전라좌수영의 이순신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남해 일대에서 항전했다.

조정의 출전 명령을 받은 이순신의 지원을 받아 옥포 등지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옥포해전에 대한 공으로 조정에서 이순신보다 1품계 아래의 관직을 내리면서부터 둘 사이에 불화가 생겼다.

이후 이순신이 모함에 몰려 투옥되자 경상우수사 겸 경상도통제사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정유재란 때 칠천량에서 삼도수군을 이끌고 싸웠으나 대패했다.

사후 두 차례 전쟁의 공을 인정받아 1등 공신으로 책정되었다.

본관은 원주. 무과에 급제한 뒤 조산만호가 되어 오랑캐를 토벌한 공로를 인정받아 부령부사로 승진했으며,

이어 종성부사를 지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개월 전에 경상우수사로 임명되었다.

그가 동래에 부임했을 때 전선은 7, 8척뿐이고 전쟁장비는 물론 수군의 기강도 흩어져 있자,

주변의 사천·고성·곤양 등지를 돌며 수군모집과 정비에 힘썼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4월 14일 박홍이 이끄는 경상좌수영군이 일본군과의 교전도 없이 궤멸되었으며,

그가 관할하는 경상우수영의 장병들도 대부분 흩어졌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전라좌수영의 이순신(李舜臣)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남해 일대에서

20여 일 동안 활동하며 적선 10여 척을 부수었다.

5월 2일 조정의 출전 명령을 받은 이순신이 지원하자 5월 7일 합동하여 옥포 등지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후 그는 이순신·이억기(李億祺) 등과 함께 합포·적진포·사천·당포·당항포·율포·한산도·

안골포·부산포 해전에 참전하여 일본 수군을 격파했다.

그러나 옥포해전에 대한 공으로 조정에서 이순신에게는 자헌대부를, 그에게는 1품계 아래인

가선대부를 내리면서부터 둘 사이에 불화가 생겼으며, 1593년 8월 신설된 삼도수군통제사에

이순신이 임명되자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그는 1594년 충청병사, 얼마 후에는 전라좌병사로 전임되었다.

이후 조정에서 그를 수사로 재임명하자는 논의가 있던 중 이순신이 서울로 압송되자

1597년 1월 경상우수사 겸 경상도통제사로 임명되었다.

일본이 명나라와의 화의가 결렬되자 병력을 총집결하여 재침입하자 칠천량에서 삼도수군을 이끌고 싸웠으나

대패했고, 전라우도수사 이억기, 충청수사 최호(崔湖) 등과 함께 전사했다.

그는 임진왜란 발발부터 칠천량해전까지 10여 차례의 해전에서 많은 공을 세워

1604년 이순신·권율 등과 함께 선무공신 1등으로 책정되고 원릉군으로 추봉되었다.[다음백과]

 

△  (10:14)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x162.9봉에 오르고 준희님 산패가 있다

지도상 무명봉은 산불감시초소 오르기 전이며 법광님 띠지가 외롭게 있네요...

 

△  이제 일반 산객도 보이고 조금 지나니 자작나무 숲도 지나고...

 

 

 

△  정말 갈림길 지름길이 수없이 나타나고...

 

△  무명봉에 오르니 정자도 보이고 운동기구들도 보이고...

 

 

 

 

△  (10:31)  경기 평택시 도일동과 지산동을 잇는 4차선 도로인 큰흔치고개에 내려선다

오늘 중간기착지 여기서 차에둔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 하기로 합니다

생태이동통로가 설치되어 있고 여기는 많은 등산객이 보인다...

 

△  점심을 먹고 생태이동 통로를 지나고 우측으로 평택시 지산동 방향 뷰...

 

△  (10:59)  큰흔치고개를 지나 약간 둔덕에 올라 내려서니 작은 흔치고개에 내려선다

경기 평택시 장안동과 지산동을 잇는 고개이며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이제 등로는 반질반질 많은 사람들이 있어 마스크를 착용 한다...

 

 

 

 

 

 

△  (11:13)  정상석이 있는 x149.4(부락산)에 오르고 지도상에는 불악산으로 되어 있다

불악산(佛岳山)이 변하여 현재의 지명이 부락산(負樂山)으로 추정 된다

덕암산 부락산 풀무골전설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사진 한장 남기고 지나 갑니다...

 

 

△  (11:20)  지맥길에서 약간 벗어난 정자가 있는 무명봉에 오르고 멋진 정자가 있다

지적 삼각점이 있고 이제 왔던길로 되돌아 갑니다...

 

△  은혜중.고등학교 방향으로 내려서다가 좋은 길을 버리고 우측 희미한 등로로 내려서고...

 

△  도로에 내려서서 좌측으로 도롯가에는 벚나무들이 도열해 있다

봄철에는 무척 아름다운 곳으로 여기며 은혜중고등 학교 방향으로 오른다...

 

△  가드레일이 끝나는 곳에서 우측 위험 공사구역출입금지 방향 숲으로 들어 갑니다

작은 구릉지를 넘어가고 가시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좌측에 민가가 보이고 묶어 놓은 개가 밥값을 한다고 엄청나게 짖어 대네요

그래서 빨리 지나 가니 주인 아가씨가 개가 짖으니 나와 보면서 길이 없다고 하네요

그래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가야할 곳이라 하면서 지나 갑니다

두릅나무들이 많이 보이고 지나 오면서 사진을 남김니다...

 

△  능선으로 지나가니 우측으로 이충문화체육센타 운동장이 보이고 규모가 크다...

 

△  운동장 울타리를 따라서 지나 가고 안에는 한창 동호회 축구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고...

 

 

△  이제 평택시 이충동 동령마을 사잇길 도로를 따라서...

 

△  삼거리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송탄충현교회도 보이고...

 

△  교회를 지나 좌측으로 동령마을 표지석도 보이고...

 

 

△  도로를 따라서 직진 하다가 사거리에서 우측 평택시의회 방향으로...

 

 

△  계속 도로를 따라서 좌측에 송탄고등학교 정문을 지나고...

 

△  장안동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좌측 도로를 따라서 결국 송탄고등학교 담벼락을 따르고...

 

△  갈림길 삼거리 우측 개성집 방향 도로로 진행 하고...

 

△  302번 도로 밑 지하차도로 해서 우측으로...

 

△  (11:58)  경기 평택시 이충동과 장당동 경계인 돌우물고개에 도착 합니다

돌우물을 알리는 표지석이 보이고 이제 302번 도로 옆길을 따라서 오른다...

 

△  도로 합수점 근처에서 좌측으로 폐 컨테이너 두채가 보이고...

 

△  좁은 1차선 도로를 따라서 좌측에 멋진 전원주택지 한채가 보이고...

 

△  우측으로는 평택시 서정동 방향 아파트 단지들이 보이고...

 

 

△  전원주택지 입구가 보이고 우측으로 수렛길을 따라서...

 

△  논으로 이어지는 수렛길을 따르다가 좌측 숲으로 들어 가고 길은 없다

여기는 아카시아 가시들이 헤집고 조금 오르니 뚜렷한 등로와 조우 합니다

식재된 작은 소나무 숲길을 올라 우측으로 휘어져 지나 갑니다...

 

△  (12:11)  식별이 되지 않는 삼각점이 있는 x89.5봉 입니다

모처럼 먼저간 선답자 띠지들이 많이 보이고 있네요...

 

 

△  삼거리 갈림길에서 직진 초소처럼 보이는 곳으로 오르고 말뚝 기둥도 보이고 철조망이 있다

그러나 오래되어 넘어 가기는 쉽고 약간 가시들이 있는 곳이다...

 

 

△  이제 좋은 길을 만나고 우측으로 평택시 이충동 방향 뷰...

 

 

△  직진 공사중인 언덕배기로 오르고 펜스를 따라서...

 

 

△  엄청 큰 건물이 보이고  광동제약사 건물 이란다...

 

 

△  광동제약사거리 도로를 건너서 계속 직진하고...

 

△  장당교를 지나고 아래에는 경부선 철로 위를 지나는 곳이다...

 

△  우측으로 평택시 장당동 방향 뷰...

 

△  좌측으로는 평택시 모곡동 방향 뷰...

 

△  다리를 건너서 삼거리 좌측 한동안 도로옆 자전거 길을 따라서...

 

 

△  때마침 열차가 지나가고 그너머 큰 공장도 보이고...

 

△  광동제약 정문을 지나고 공장 규모가 엄청나다...

 

△  건너편 아이파크 쌍둥이 건물이 보이고...

 

△  우측에 한창 공사중 평택 삼성반도체 공장 건설중이란다...

 

  다시 도로는 우측으로 휘어져 이어지고 계속 도로를 따라서...

 

 

△  평택삼성반도체 공장 규모가 엄청나고 그래서 평택시가 활기찬 도시인것 같다...

 

△  (13:41)  지제 교차로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우측에 여기도 큰 공장이 보이고...

 

△  앱을 보니 도로를 건너야 하기에 차량이 뜸한 틈을 이용해 무단 횡단하고...

 

 

△  공장 사잇길 도로를 따라서 진행하고...

 

△  나홀로 이제 앱을 따라서 좌측 도로로 가도 되지만 나홀로 진행 합니다

공장안으로 들어가고 휴일이라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  공장을 지나 절개지로 오르고 그래도 약간 계단처럼 만들어 놓아서 쉽게 오르고...

 

△  숲길로 오르니 산줄기 아래에는 평택~제천간 고속도로가 보이고 넓은 공터도 보이고...

 

△  어떤 한분이 전지가위로 등로에 어린 나무들을 자르고 있다...

 

△  고덕국제화일반산업단지 조성공사 중인 택지 개발 지구...

 

△  묘지를 지나 약간 좌측으로 휘어서 조금 내려 섰다가 다시 우측으로 휘어져 지나 가고

골프 연습장이 나타나고 조릿대와 그물망 사이로 들어 갑니다...

 

 

△  미니 연습장이 보이고 계단으로 올라서 내려서니 좌측에 골프 연습장이 보이고...

 

 

△  도로에 내려서서 좌측으로 조금 지나서 삼거리 우측 도로를 따라서...

 

 

△  경기 평택시 고덕면 방축리 마을 사잇길로 지나 가고...

 

△  삼거리 갈림길에서 우측 볼록거울 방향으로...

 

△  우측 시멘트도로를 버리고 우측 도로를 따라서 내려서고...

 

 

△  지나가면서 서천사를 바라 보면서 경내는 들리지 않는다...

 

서천사

 

서천사(署千寺)는 경기도 평택시 고덕면 방축리 103-1번지 장안산에 있는 한국불교해동종 사찰이다.

따가한 햇살이 드넓은 평택 평야를 뒤덮을 때 장안산 아래 골짜기에서 시원한 바다 바람이 불어 온다.

얼마전 까지만해도 방축리를 보호하는 성황당이 있었으며 사명대사의 승병 주둔지로

평택의 호국사찰로 알려진 서천사가 위용을 뽐냈던 곳이다.

방축리는 일제강점기 때까지만 해도 평택항을 내려 보던 어촌 마을로서 논방죽을 만들어 농사를 짓던 곳이다.

또 이곳에는 나옹대사가 중건하고, 사명대사의 승병 주둔지로 알려진 유서 깊은 호국사찰 서천사가

500여년의 법맥을 이어 오면 자리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앞으로 펼쳐진 도로와 뒤로 뚫린 고속도로로 그 옛날의 전경을 찾아볼 수 없다.
현재 서천사는 논방죽을 메운 들판을 앞으로 현지인들의

무관심 속에 폐허가 된 성황당을 뒤로 여법한 가람을 유지하고 있다.

수십년전 논방죽을 개흙으로 메운 모습이 활이 휜 모습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활딱지'

언덕 위에 서천사가 있으며, 아이러니하게 서천사가 자리한 방축리 가람 역시 그 모습을 흡사하게 빼닮고 있다

가을 바람이 황금물결을 이루는 지금, 평택의 불교 유적이 남아 있는 서천사를 찾아 가 보자.

평택의 호국사찰이자 미륵도량의 보금자리인 법당에는 승병을 보호하던

하아얀 미륵이 백불이 되어 500여년 전 모습 그대로 국토를 수호하고 있다.[대한민국구석구석]

 

 

△  지름길로 간 대원들을 만나고 이제 논으로 이어지는 시멘트도로를 따라서...

 

△  삼거리도로를 만나서 좌측으로 도로를 건넌다...

 

△  (13:44)  고덕교차로에 도착하고 우측 디디팜 방향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오룩스 앱에는 여기 까지다...

 

  교차로 근처를 빙 돌아서 지나가고...

 

 

△  계속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멋진 장승도 보이고...

 

△  k.t.x 철길도 보이고 철길 밑을 지나고...

 

△  계속 논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  우사가 있는 곳에서 좌측 9시 방향으로 계속 논 사잇길로...

 

△  새로운 철길이 보이고 계속 직진 시멘트도로를 따라서...

 

△  우리가 타고온 차량이 보이고...

 

△  뚝방길로 오르니 좌측에 도일천이 보이고...

 

 

△  (14:11)  드디어 (안성천/진위천)이 보이는 곳에서 쌍령지맥 이름으로 두구간으로 해서 마무리 합니다

이번 구간은 도심을 한동안 진행해서 발바닥이 아프고 했지만 무사히 마무리 합니다

날씨도 좋고 춥지도 않고 미세먼지도 크게 없고 행복한 하루 인것 같다

함께한 대원들 고생 많이 했읍니다

우리는 대구지맥클럽 깐부 입니다...

 

 

△  차량으로 이동하여 경기 평택시 고덕면 당현리 140 (불난버섯집) ☎ 031-611-6171에서 조촐하게

버섯매운탕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고 대구에 일찍 도착 합니다...

 

 

 

△  산행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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