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단지맥 산줄기 이어걷기 두번째(남한산성남문~팔당대교)구간이다

산성터널 입구에서 남한산성(남문)으로 오르고 거리는 280m 정도 됩니다

이제 성안 성터를 따라 오르고 좌측으로 성남시 서울시도 조망되지만 개스로 인하여 희미하다

청량산에 오르니 청량당이 자리잡고 있다 

계속 성터를 따라서 지나가고 서문도 지나고 북문에 내려서니 여기는 해체후 공사중이다

계속 성벽을 따라서 오르니 동장대를 지나 내려서보니 지맥길이 아니다

다시 되돌아서 동장대를 내려서니 성밖으로 나가는 제3암문이 있다

이제 등로는 약간 편안하게 이어지고 남한산 정상석도 보인다

조금 더 오르니 성터 근처에 삼각점봉도 오르고 내려선다

계속 등로는 내리막이 이어지고 약간의 무명봉을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삼각점봉에 올라 내려서고 급내리막이 이어지며 은고개까지 내리막 구간이다

여기서 도로를 따르는 선답자도 있지만 우리는 우측 지장사 근처를 지나 x190.3봉에 올라 내려선다

고속도로도 보이고 다시 도로에 내려서서 늘푸른농원근처에서 점심을 먹는다

이제 제2중부고속도로 밑을 지나서 우측으로 조금 오르면 관리용 철계단이 있다

이곳으로 올라 능선에 오르니 희미한 등로도 보이고 매주고개도 지난다

다시 등로는 희미하고 한고비 치고 오르고 까칠한 구간이다

무명봉 x425.8봉에 오르면서 이제 등로는 뚜렷하고 길도 좋다

그러나 계속 은근히 업다운이 이어지고 용마산 두리봉 까지 까칠하다

이제 제법 산객들이 진행방향으로 내려오고 검단산에 오른다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기다렸다고 인증샷을 날린다

예봉산 팔당대교 미사리조정경기장 아스라히 한강기맥 두물머리도 보인다

검단산에서 좌측으로 우리는 바깥창모루 방향으로 내려서기로 합니다

(한강/산곡천)이 만나는 곳에서 검단지맥 이름으로 마무리 합니다...

 

 

◎산행지:경기/하남시(일원)

◎언제:2022.05.29일(일욜)

◎누구와:대구지맥클럽

◎산행거리:22.10km(오룩스맵) (접속280m포함)

◎산행시간:07시간35분

◈주요산행기점시간

☞산성터널입구:06시23분

☞남한산성남문:06시25분

☞x497.1(청량산):06시51분

☞서문(우익문):06시59분

☞북문(전승문):07시15분

☞x402.0봉:07시23분

☞x522.0(남한산):08시03분

☞x303.0봉:08시57분

☞은고개:09시09분

☞x190.3봉:09시13분

☞제2중부고속도로:09시50분

☞x425.8봉:10시31분

☞x595.5(용마산):10시55분

☞x536.0봉:11시17분

☞x569.0(두리봉):11시37분

☞x658.4(검단산):12시20분

☞x586.7봉:12시54분

☞x292.0봉:13시22분

☞x112.6봉:13시43분

☞창모루:13시50분

☞팔당대교(한강/산곡천):13시58분

 

△  (06:23)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신성리 1139-2 산성터널 입구에서 검단지맥 두번째 이어 갑니다

우측에 산성터널남문주차장 버스 정류장도 보이고 이제 도로를 따라서 남문으로 오른다

이른 아침이지만 벌써 운동하는 사람도 보이고 날씨는 흐르다...

 

 

 

△  (06:25)  남한산성남문에 도착하고 산성터널 입구에서 약 280m 정도 거리에 있다

이제 성벽을 따라서 오르고 성밖으로도 등로가 있지만 안쪽이 길이 좋다...

 

남한산성(지화문) 南漢山城至和門

 

남한산성 서남쪽 해발 370m 지점에 있다.

선조 때 남문·동문 등을 수축(修築)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아 그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남한산성의 사대문 중 가장 크고 웅장하며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산성으로 피신할 때 이 문을 통과하였다.

정조 3년(1779년) 성곽을 개축하면서부터 지화문이라 불렀다.

 성문은 홍예문으로, 높이 4.75m·폭 3.35m·길이 8.6m이며 홍예기석 위에 17개의 홍예석을 쌓아 만들었다

. 홍예문 좌우 성벽은 자연석을 수평줄에 맞춰 막돌 쌓기로 축조한 것이다.

1976년 복원된 문루는 정면 3칸·측면 3칸 규모이다.

 

△  성밖에는 보호수 느티나무가 자라고 나무는 작지만 오래된 고목이다...

 

△  성벽 안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서 한고비 치고 오르고...

 

△  좌측으로 성남시가 조망되고 개스로 인하여 원경이 희미하고...

 

 

△  서울시 송파구 방향 뷰도 펼쳐치고 오늘 조망은 좋은 곳인데 희미하게 보인다

한편으로 햇빛이 없고 해서 바람도 불어주니 시원해서 좋다...

 

영춘정(迎春亭)

 

영춘정은 '봄을 맞이하는 정자'라는 뜻으로, 남한산성을 올라가는 산성로 왼쪽 구릉의 정상에 있던 정자이다.

정자가 세워졌던 지점은 왼쪽으로는 성남시를, 오른쪽으로는 송파구를

포함한 서울시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위치이다.

현재 건물터에는 높이 0.58m, 윗너비 1.54m, 아랫너비 1.8m인 원형의 주춧돌

8기(基)가 2.1m 간격에 긴지름 5.1m인 팔각 형태로 남아 있고, 서쪽으로 2.6m 지점에 약 4.5m의

기단석 흔적이 남아 있으며, 주변에는 정자를 조성하는 데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경질의 수키와 조각들과 암키와 조각들이 산재하여 있다.

1972년 남한산성의 천주봉에 새로 정자를 건립하고 영춘정이라는 현판을 걸어놓았는데,

그 형태가 팔각으로 지어져 보통 팔각정(八角亭)이라 부른다.

 

 

△  성터 윗쪽을 현재 공사중이고 데크 계단을 따라서 오르고...

 

 

 

△  메탄처는 전쟁이 일어났을때 사용할 전략물자인 숯을 묻어 놓은 장소를 말한다...

 

 

 

△  우측에 성터에서 조금 떨어진 청량산에 오르니 청량당이 자리잡고 있다...

 

청량당(淸凉堂)

 

청량당은 이회와 그의 부인 송씨(宋氏), 벽암대사를 모신 사당이다.

모시고 있는 초상화는 한국전쟁 때 분실되어 훗날 새로 그린 것이다.

조선 인조 2년(1624) 남한산성을 쌓을 때 동남쪽의 공사를 맡았던 이회는

기한 내에 공사를 마치지 못하게 되자 공사비를 탕진하고 공사에도 힘쓰지 않아

기일 내에 끝내지 못했다는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하였다.

그의 부인(송씨)도 남편의 성 쌓는 일을 돕기 위해 자금을 마련하여

오던 중에 남편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강에 빠져 자살하였다.

그 뒤에 이회가 쌓은 남쪽 성벽이 다른 성벽보다도 더 튼튼하고 완벽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의 무죄가 밝혀지자 그의 넋을 달래기 위해 사당을 지었다고 한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안쪽 정면에 이회의 영정(초상화)가 있고 그 양옆으로 처첩(부인과 소실)과 벽암대사의 영정이 있다.

 

 

 

△  (06:59)  서문(전승문)이 보이고 현판은 보이지 않고 성밖에서 보이고...

 

남한산성우익문(南漢山城右翼門)

 

남한산성을 처음 쌓았을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정조 3년(1799)에 개축하여 우익문(右翼門)이라 부른다.

1637년 1월 30일 인조가 세자와 함께 청나라 진영으로 들어가 항복할 때 이 문을 통과했다고 한다.

서쪽 경사면이 가파르기 때문에 물자를 이송하기는 힘들지만 서울 광나루와 송파나루 방면에서

산성으로 진입하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성문은 반원형 홍예문이며 높이 2.5m·폭 2.1m로 작고 좁다.

문 안쪽에는 2짝의 목재 판문이 있다.

정면 3칸·측면 1칸의 문루는 겹처마의 팔작지붕 양식이다

 

△  서울 송파구 방향 뷰가 펼쳐지고 개스로 인하여 조망은 크게 없고...

 

 

△  경기도 하남시 방향 뷰도 펼쳐지고...

 

 

△  (07:15)  북문(전승문)도 보이지만 지금은 해체되어 새로 건립되고 있다...

 

남한산성전승문(南漢山城全勝門)

 

남한산성 북쪽 해발 365m 지점에 있는 북문으로, 이 문을 통해 세곡을 운반하였다.

인조 2년(1624)에 신축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정조 3년(1779) 성곽을

개보수할 때 개축한 후 전승문(全勝門)이라 이름 붙였다.

현재 편액은 걸려 있지 않다.

성문은 홍예기석 위에 10개의 홍예석을 쌓아 만든 홍예문으로 높이 3.65m·폭 3.25m이다.

성벽의 두께는 7.1m에 이른다.

단층의 문루는 정면 4칸·측면 2칸 규모이며 겹처마를 두른 팔작지붕을 올렸고, 주심포 양식의 민흘림 기둥을 세웠다.

남한산성. 이 산성에는 모두 4개소의 문이 있다

물론 성마다 동서남북의 문을 마련하고, 각기 그 이름을 따로 붙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동문이나 북문과 같은 이름들로 부르지만.

남한산성의 북문은 조선조 정조 3년인 1779년 성곽을 개보수 할 때, 그 이름을 '전승문'이라고 붙였다.
남한산성에는 원래 4개소의 문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선조 때의 기록을 보면 남한산성 내에는 동문과 남문, 그리고 수구문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북문은 인조 2년인 1624년에 성을 개보수할 때, 새로 신축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 북문을 전승문이라 이름을 붙인 것일까

남한산성의 북문을 '전승문(全勝門)'이라고 부른 이유는, 다시는 전쟁에서 패하지 말자는 뜻이 담겨져 있다.

병자호란 당시 적과 대치를 하고 있던 남한산성 내의 300명 군사들은,

 영의정이던 김류의 주장에 따라 북문을 나서 적에게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성문을 나선 병사 300명이 수많은 적을 기습공격 한다고 해서 이기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성문을 나선 병사들은 적의 계략에 말려들어 변변한 전투 한 번을 못해보고 몰살하고 말았다.

이는 '법화골 전투'라고 한다.

이 북문을 나선 병사들이 법화골에서 패전한 전투는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의

최대의 전투이자 최대의 참패로 기록돼 있다.

남한산성 내에서 청나라 군사들과 대치하고 있던 병사들

그들은 45일간이나 남한산성 내에 머물면서 청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아마 이 북문의 기습공격이 실패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더 오랜 시간을 버티거나

싸움다운 싸움을 해보지는 않았을까

군사 300명이 적에게 몰살당한 것이 최대의 전투로 기록돼 있으니 말이다.

 

△  바닥에는 야자매트도 깔려 있고 제법 한고비 치고 오르고...

 

△  (07:23)  성벽 근처 약간 벗어난 곳에 오르니 샛길이 보이고 x402.0봉 입니다

쉼터 의자도 보이고 가져온 띠지 하나 부착하고 지나 갑니다...

 

 

△  현절사 갈림길도 지나고 많은 샛길이 보이고 이쪽으로 내려가는 분도 있었다...

 

현절사(顯節祠)

 

1972년 5월 4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다. 

병자호란 때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청(淸)나라 선양[瀋陽]에 끌려가 순절한

 홍익한(洪翼漢)·윤집(尹集)·오달제(吳達濟) 삼학사(三學士)의 우국충절(憂國忠節)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1688년(숙종 14) 삼학사의 영령을 위로하기 위해 유수 이세백(李世白)이 세웠고,

1693년 봄에 사액(賜額)하였다.

삼학사와 같이 청나라에 항복하기를 반대했던 주전파(主戰派)의 거두 김상헌(金尙憲)·정온(鄭蘊)

두 충신도 1699년부터 함께 모시고 있다.
남한산성(南漢山城) 동문(東門) 내 북쪽 산기슭에 있으며, 건평은 29.5평이다.

목조 단층 와즙(瓦葺:기와로 지붕을 이는 것)에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부속건물로 동재(東齋)·서재(西齋)·내외일주문(內外一柱門), 1978년 복원된 내삼문(內三門)이 있다.

수복사(守僕舍)·외삼문(外三門)은 없어졌다.

 

 

 

 

△  성밖으로 나가는 문이 보이고 조금지나서  발아래로 또하나의 문이 보이고 동장대터가 있는 장소에 오른다

그래서 성벽을 따라 내려서니 앱을 보니 알바이고 다시 되돌아 갑니다

아마 150m 내려선것 같고 동장대에 올라 내려서니 바깥으로 나가는 성문이 있다...

 

동장대(東將臺)

 

장대(將臺)는 전투시 지휘가 용이한 지점에 축조한 장수(將帥)의 지휘소(指揮所)를 말한다.

장대는 성내(城內)의 지형 중 가장 높고 지휘와 관측이 용이한 곳에 설치하였으며,

성이 넓어 한 곳의 장대에서 지휘할 수 없는 경우 각 방면에 장대를 마련하였다.

장대는 전투시에는 지휘소인 반면 평상시에는 성의 관리와 행정 기능도 수행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성의 장대는 규모가 크지 않은 단층형식이 대부분이나 남한산성이나

수원 화성의 경우처럼 중층 누각 형태의 장대도 있다.

동장대는 남한산성의 동북쪽 모서리 부분의 해발 501m 지점에 위치한다.

이곳은 서쪽에서 뻗어 나온 줄기가 망월봉(望月峰)을 이루며 갈라져

한 줄기는 남쪽으로 내려가고 다른 줄기는 동북쪽으로 이어져 법화봉을 이루고 있다.

동장대 부근은 여주목사좌부별장가, 그리고 외동장대는 죽산부사후영장가

각각 군사 1,991인, 2,608인을 지휘하여 방어책임을 맡았던 곳이다.

동장대는 원성의 동북쪽 모서리 부분이며, 해발 501m 망월봉 정상에 위치한다.

동장대에는 인조(仁祖) 2년1624 산성수축시 동장대가 설치되고 누각이 함께 건축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1750년대에 제작된 『해동지도(海東地圖)』이후의 지도에 보면 장대의 누각(樓閣)이 나타나지 않고

터만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18세기 초에 누각이 무너지고

난 이후 다시 누각을 건립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현재 터만 남아 있으며 동서 21m, 남북 17m에 높이 350cm의 축대를 쌓아 구축한 장대의 면적은 357㎡이다.

이곳에는 전돌(塼乭)과 와편(瓦片)이 산재되어 있으며 지상에는 4개의 초석이 남북방향으로 노출되어 있다.

 

△  제3암문을 통과하여 우측으로 성벽 바깥방향으로 지나 갑니다

또하나의 성문이 보이고 이제 우측으로도 성벽이 있지만 많이 훼손되어 있다

암문은 적의 관측이 어려운 곳에 설치한 문으로 일종의 비밀통로이기 때문에 크기도 작고

적에게 쉽게 식별될수 있는 시설도 설치하지 않았다

제3암문은 원성과 봉암성을 연결하는주출입구로 다른 암문에 비해 매우 큰 편이다

문 윗부분이 무지개 모양으로 반쯤 만든 홍예문이며 규모 또한 폭이 2.36m에 달해

성문을 역활까지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암문은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중 하나인 군사경관암문에 속한다...

 

 

 

△  위례산성둘레길 갈림길도 지나고 지맥길은 직진으로 진행하고...

 

 

△  (08:03)  남한산 정상석이 있는 곳에 도착하고 개인단체 사진 한장 남긴다

오늘 산행대원은 8명 오붓하게 산행을 하게 되었다...

 

 

 

△  (08:10)  근처에 성터가 있어 아래에 정상석이 있고 실질적인 남한산 정상은 여기다

4등 삼각점이 있는 x522.0봉이고 산패는 없고 띠지 하나 부치고 내려선다...

 

△  이제 좌측 엄미리(은고개)방향으로 내려서고 계속 등로는 좋고 내리막이다...

 

 

△  작은 둔덕도 오르고 나무 계단도 보이고 올랐다 내려서니 엄미리계곡 갈림길도 지나고...

 

 

 

 

△  계속 등로는 좋고 약간의 오르 내림이 이어지고 흙이 다파헤져 계단만 보이고...

 

△  무명봉에 올라 내려서니 송전탑도 지나고...

 

 

△  (08:57)  짧은 구간이지만 제법 치고 오르니 식별이 되지않고 마모된 삼각점이 있는 x303.0봉 입니다

모처럼 준희선생님 산패가 보이고 제법 가파르게 내려서야 합니다

안전기둥도 보이고 지그재그로 내려서는 곳이다...

 

 

△  잔디가 없는 묘지를 지나고 내려서니 시야가 트인다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광지원리 방향 뷰도 펼쳐지고 있다...

 

 

△  우측으로 묘지가 나타나고 묘지로 이어지는 돌계단을 따라서 내려선다

좌측에 만두집 간판이 보이고 제법 규모가 큰 식당이 있다...

 

△  (09:09)  경기 하남시 상산곡동과 경기 하남시 남한산성면 엄미리를 잇는 은고개이다

중앙분리대가 있지만 우측으로 조금 지나면 분리대가 없어 무단 횡단 합니다

도로를 건너서 좌측으로 조금 진행 합니다...

 

 

△   지장사 입구가 보이고 우측으로 데크로 오르는 등로가 보이고 이방향으로 오른다

대부분 여기서 무명봉을 오르지 않고 도로를 따라서 가는 선답자도 있다...

 

 

  (09:13)  데크계단을 오르니 약간 넓게 만든 전망대처럼 보이고 여기서 좌측 능선으로 오른다

데크 근처에는 줄이 쳐져 있고 조금 오르니 x190.3봉 입니다

아무 흔적도 없고 가져온 띠지 하나 부착하고 내려선다...

 

△  잣나무 숲을 지나 내려섰다 올라 지맥길은 좌측으로 휘어져 지나가고...

 

△  좌측에 공장이 보이고 텃밭도 보이고 우측 고속도로 방향으로 내려선다

울타리가 있지만 관리용 울타리 대문이 있어 열고 나갑니다...

 

 

△  이제 고속도로 갓길을 따라서 지나가고 중부고속도로가 보이고...

 

△  이제 고속도로 옆 수로 방향으로 내려서니 여기서 철울타리가 쳐져 있다

여기도 관리용 울타리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 내려선다...

 

 

△  녹쓴 작은 컨테이너도 보이고 컨테이너 앞을 지나 좌측 공장을 끼고 내려선다

철대문이 보이고 우측 농장 사이로 내려서면 도로를 만나서 우측으로 내려서고...

 

 

 

△  우측 작은 다리를 건너서 지맥길은 이어지고 하남대로6번길로 되어 있다

오늘 중간기착지 직진하여 차량이 대기한 곳으로 갑니다...

 

△  (09:47)  일찍 조식을 먹었기 때문에 이른시간이지만 여기서 점심을 먹는다

인근에 늘푸른농원이 있고 해서 약간 넓은 터가 있어 여기서 식사를 합니다

이제 간식 식수만 넣고 다시 출발 합니다...

 

 

△  고속도로 지하차도를 지나 우측으로 오르고 시멘트포장이 되어 있고...

 

 

△  중부고속도로 제2중부고속도로 만나는 근처이다...

 

△  지맥길은 조금 지나서 앱이 그으져 있지만 길이 보이지 않고 해서 약간 되돌아 옵니다

관리용으로 만든 철계단이 보이고 이곳으로 오르고 파이프가 새것으로 보인다

아마 설치한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은것 같다...

 

△  철계단을 지나 무명봉에 올라 약간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서고 내리막에는 낙엽이 많다

그래서 가끔 미끄려지기도 하면서 내려서고 정말 이제 낙엽이 썩지 않는다

그래서 올가을에 다시 낙엽이 쌓이고 해서 낙엽이 거름이 되지 않는다

아마 산성탓으로 해서 써기지 않으니 산불에도 취악 하다...

 

 

△  넓은 묘지터를 지나 우측으로는 농장이 보이고 무슨 꽃인지 한창 예쁘게 피어나고...

 

△  (10:10)  수렛길을 만나고 지도상 매주고개로 나오고 조금 지나면 갈림길이 있다

좌측에 조금 떨어진 곳에 엄미리공동묘지도 자리잡고 있다...

 

△  숲으로 들어서서 약간 우측 능선으로 오르고 그러나 길도 보이지 않는다

낙엽이 많아서 족적들이 보이지 않고 앱을 보면서 오른다

제법 가파르게 치고 오르고 오르막에 낙엽이 많아서 뒷걸음 치기도 합니다...

 

△  조금 오르니 묘지도 보이고 묘지 뒷쪽을 지나니 이제 제법 뚜렷한 등로가 보인다

그러나 바이크자국 흔적이 보이고 제법 치고 오르는 곳이다...

 

 

△  능선에 오르니 쉼터의자도 보이고 우측에서 올라오는 등로와 조우하고 이제 등로는 좋다...

 

△  (10:31)  무명봉에 오르니 x425.8봉 지맥길은 약간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선다

아무런 흔적도 없고 가져온 띠지 하나 부착하고 내려서고 등로는 계속 좋다...

 

 

△  한고비 안부에 내려서니 어진마을버스정류장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이제 검단산이 4.49km을 알리고 이제 제법 치고 올라가야 합니다...

 

 

 

△  (10:55)  2등삼각점 정상석이 있는 x595.5(용마산)에 오르고 나무 사이로 팔당호도 보인다

이제 날씨도 덥고 해서 사진 한장 남기고 숲으로 들어가서 쉬어서 갑니다...

 

 

△  이제 우리가 가는 방향으로 오는 산객도 더러 보이고...

 

 

△  (11:17)  무명봉에 오르니 x536.0봉 준희선생님 산패도 보인다

계속 등로는 업.다운이 제법 심하게 이어지고 날씨까지 더워서 힘들다...

 

△  이쁜나무 팽나무처럼 보이고...

 

△  내리막에도 바이크자국이 심하고 오르막에도 계속 바이크자국이 있어 더 힘들다...

 

 

  작은 돌탑이 있는 무명봉도 오르고 오늘 구간중 가장 힘든 곳이다...

 

 

△  (11:37)  나무정상목이 세워져 있는 x569.0봉 고추봉(두리봉)으로 되어 있다

사진 한장 기념으로 남기고 여기서 다시 쉬어서 갑니다

이제 파란 하늘이 펼쳐지고 떼죽나무 여기는 한창 꽃이 피어 있다...

 

 

 

△  두리봉에서 제법 내려서니 송전탑도 지나고 우측에 수자원공사 갈림길도 보이고...

 

 

 

△  이제 검단산으로 오르는 등로는 급오르막이 아니고 서서히 이어져 수월하다

나무 계단도 보이고 작은 헬기장도 지나고 나무 그늘 아래에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  곱돌약수터 갈림길을 지나고 스님이 시주를 받도 있고...

 

 

 

△  (12:20)  검단지맥을 낳은 모산 x658.4(검단산)에 오르고 좌.우 조망이 확 트인다

많은 사람들이 보이고 기다림에 있다가 먼저온 대원들 사진 한장 남긴다

데크 전망대가 좌우에 있고 막걸리를 파는 곳도 있네요...

 

검단산

 

남시청 동쪽에 위치한 높이 657m로 하남시의 대표적인 명산으로 유명하다.

백제 한성시대 하남 위례성의 숭산(崇山), 진산(鎭山)으로서 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산으로 전해진다.

검단산 정상에서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류하는 양수리와 하남시는 물론이고

서울과 양평 일대, 팔당호 주변의 경관도 감상할 수 있어 서울 근교의 하루 등반 코스로 각광 받고 있다.

서울 근교에 있고 교통이 편리하며,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을 뿐 아니라 코스도

그다지 어렵지 않아 일일 산행으로 가족 나들이하기에 좋다.

산행은 하산곡동의 산곡초등학교 쪽과 팔당댐 건너 아래배알미쪽 등산로를

이용할 수 있는데 전자가 교통이 더 편리하다.

이밖에 창우동의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 방면에서 시작되는 현충탑 등산로도 있다.

하산곡동에서 출발하는 산행은 처음에는 경사가 매우 가파르지만 산 중턱에는 노송이 길을 덮어 쉬어가기 좋다.

넓고 평평한 정상에 서면 멀리 북한산과 도봉산 줄기가 한눈에 보인다.

동쪽으로는 팔당댐이 보이고, 남쪽으로 뻗은 능선에는 용마산(龍馬山)이 솟아 있으며,

서쪽으로는 중부고속도로가 힘차게 달린다.

본래 세종대왕의 능을 이곳에 쓰려다 여주로 옮겨가게 되어 닦아 놓은 능터가

지금도 남아 있어 역사를 말해주고 있으며, 《서유견문》을 쓴 유길준(兪吉濬)의 묘가 있다.

 

△  우측으로는 한강/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한강기맥도 보이고 공도교 양수대교 족자도도 보인다

천마지맥 끝자락도 보이고 날씨가 좋았으면 하는데 이만해도 다행이다

정말 멋진 풍광이 한눈에 펼쳐진다... 

 

  좌측으로는 동서울요금소 객산 하남시가 조망되고...

 

△  천마지맥 산줄기 예봉산도 보이고...

 

△  모든 대원들이 다모여서 산객한테 부탁하여 사진 한장 다시 남긴다

그러나 좌측 끝단부위에 가끔 조리개가 다 열리지 않아서 영 사진이

이제 여기서 선답자들이 우측 윗배알미리 방향으로로 내려 갑니다

우리는 직진 x586.7봉을 거쳐서 바깝창모루 방향으로 내려서서 산곡천으로 갑니다

여기서 논란의 소지가 있는 곳이다...

 

 

△  헬기장을 지나고 돌탑봉도 지나고 많은 갈림길도 나타나고 있다

이방향으로 오르는 산객들이 많이 보인다...

 

 

△  애니메이션고 방향으로 이정목이 세워져 있고...

 

 

 

△  (12:54)  정자가 있는 x586.7봉도 보이고 사람들이 많아서 띠지는 포기하고 내려서고...

 

△  내려오면서 기암에 오르니 조망이 확 트이고 가야할 팔당대교 산곡천이 만나는 합수점이 보인다

미사리조정경기장 우측으로는 성남시가 자리잡고 있다...

 

△  다시 한강 건너편 천마지맥 예봉산이 조망되고...

 

 

△  제법 내리막이 한동안 이어지고 돌계단도 내려서고...

 

 

 

 

△  체력단령장도 보이고 갈림길 좌측 능선으로 바로 치고 오르고...

 

△  (13:22)  4등삼각점이 있는 x292.0봉에 올라 띠지 하나 부치고 내려선다

계속 내리막이 이어지고 은근히 지겹게 내려서게 된다...

 

 

△  소나무들이 관리 하는지 하나같이 번호표가 보이고...

 

△  (13:43)  구간 마지막 무명봉 x112.6봉도 지나고 좌측으로 휘어져 내려선다

계속 내리막이 이어지고 한동안 내려서고 송전탑도 지난다...

 

 

△  벙커도 보이고 데크 계단을 따라서 급하게 내려서고...

 

 

△  창모루마을 표지석도 보이고 이제 도로를 따라서...

 

△  창우2육교 다리밑을 지나 계속 도로를 따라서 은근히 차들이 많이 다닌다...

 

 

 

△  팔당대교 다리밑을 지나 여기는 차들이 많이 다니지는 않는다...

 

 

△  (13:58)  드디어 오늘 목적지 산곡교가 있는 곳에서 마무리 합니다 

다리 아래에는 산곡천이 한강에 만나는 곳에서 검단지맥 이름으로 두구간으로 마무리 합니다

두번다 그런데로 날씨도 좋고 등로도 좋고 무사히 마치게 되었네요

함께한 대원8명 모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우리는 대구지맥클럽 영원한 깐부입니다...

 

 

한강

 

간선(幹線) 유로연장 481.7km. 법정하천연장 405.5km. 유역면적은 2만 6,018㎢(북한지역 포함 3만 4,473㎢이고

 상류부는 남한강과 북한강의 둘로 나뉘며 남한강을 본류로 한다.
남한강은 강원도 태백시의 대덕산(大德山:1,307m)에서 발원하여 남서류, 영월읍에서 평창강(平昌江)을 합치고

충청북도 단양군을 지나 서쪽으로 흐름을 바꾸어 제천시를 거쳐 충주호(忠州湖)에

27억 5,000만 t의 물을 채우고 시설용량 40만 kW의 발전소(1985년 준공)를 움직인 다음

 북서(北西)로 유로를 바꾸어 달천(達川)을 합쳐 충주시를 지나서 경기로 들어간다.
도계에서 섬강(蟾江)을 합치고 이어서 청미천(淸渼川)을 합류하여 북서로 유로를 잡아

여주시를 관류하면서 양화천(楊花川) ·복하천(福河川) 등을 받아들인다.

양평군으로 들어서면서 흑천(黑川)과 만나 서쪽으로 유로를 돌려 북한강과의 합류점인

양서면(楊西面) 양수리(兩水里)에 이른다

한편, 북한강은 강원도 금강산(金剛山) 부근에서 발원하여 남류, 금강천·금성천(金城川) 등을 합치면서

화천군에 이르러 양구군 쪽에서 흘러오는 서천(西川)·수입천(水入川) 등과 만나서

파로호(破虜湖:저수량 약 10억 t)를 이루고 다시 남하, 화천군의 지류들을 모아 춘천호(春川湖)에 물을 담고 나서

춘천시의 의암호(衣岩湖)에서 소양강(昭陽江)과 만난다.
강원 인제군에서 발원하는 소양강은 남서류하면서 인제군과 춘천시에 걸치는 소양호(湖)에 29억t의 물을 채우고

20만 kW의 발전소를 가동시킨 뒤, 의암호에서 북한강과 만난다.

다시 가평천(加平川)을 합치고 남이섬을 지나 홍천강(洪川江)을 합류하여 청평호(淸平湖)를 이루고

 경기에 들어서서 양평군과 남양주시의 경계를 이루면서 양수리로 빠진다.
양수리에서 하나로 합쳐지는 한강은 경안천(慶安川)을 합류, 팔당호(八堂湖)에 괴었다가

서류하여 서울로 진입, 완만한 유속으로 시역(市域)을 관류하면서 중랑천(中浪川)·안양천(安養川) 등을 합치고

북서쪽으로 직진하여 폭을 넓히면서 김포시와 고양시의 경계를 이룬다.

파주시에 이르러 곡릉천(曲陵川)을 합치고, 임진강(臨津江)과 합류한 뒤

김포반도의 북부를 돌아 강화만(江華灣)에서 서해로 들어간다.
한강의 상류부에는 춘천·영월·여주·화천 등의 침식분지가 형성되어 있고,

하류부의 김포평야는 양질의 쌀을 생산하는 국내 유수의 곡창지대이다.

한강은 유량(流量)의 계절적 변화가 큰 편이나 상류부와 중류부에 건설된

여러 댐의 홍수조절능력으로 여름철의 범람이 크게 줄어들었다.
한강은 공업용수·농업용수뿐만 아니라, 서울·춘천·원주·제천·충주 등

유역 도시의 상수도원(上水道源)으로서 큰 구실을 한다.

한강 수계의 수력발전 시설용량은 98만 kW(1990년 말)가 넘어 전력공급에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한강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우리말에서 '큰 물줄기'를 의미하는 '한가람'에서 비롯하였다.

'한'이란, 큰, 정확한, 한창인, 같은을 뜻하는 접두사이며, 가람은 강의 옛 말이다.

즉 '큰 강'이라는 뜻이다.

한강은 삼국시대 초기까지는 '대수(帶水)'라 불렸고, 광개토대왕비에는 '아리수(阿利水)'라 기록되어 있다.

백제에서는 '욱리하(郁利河)'라 불렀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한산하(漢山河)' 또는 '북독(北瀆)'이라 표기한 기록이 남아 있다.

한강이라는 명칭이 붙게 된 시점은 백제가 중국의 동진과 교류하기 시작한 즈음인데,

그 때부터 ‘한수(漢水)’ 또는 '한강(漢江)'이라 불렀다 전해진다.
한반도의 중앙부 평야지대를 차지하는 한강 하류부는 신석기시대로부터 문화발달의 터전이 되어왔으며

삼국시대 이래 쟁패(爭覇)의 요지가 되어왔다

 특히 조선시대의 태조가 이곳에 도읍함으로써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을 이루게 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산곡천

 

유로연장 9.66㎞, 유역면적 23.83㎢이다.

경기도 하남시 남한산성의 동쪽 계곡인 상산곡동의 어둔골과 섬말 가재울 골짜기와 검단산

거문다리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상산곡동·하산곡동·천현동·창우동을 거쳐 한강으로 유입된다.

산곡이 발원지라 하여 산곡천이라 이름이 붙여졌다.
하류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전 유역이 그린벨트로, 유역면적의 70퍼센트

이상이 임야이고 나머지는 농경지와 주거지이다.

수질은 4등급이며, 공업용수나 농업용수로 이용된다.

 

 

△  인근에 있는 경기 하남시 창우동 245-1(착한쌈밥)에서 하산식을 합니다

키오스크로 주문하니까 로봇트가 음식 배달을 하네요...

 

 

△  산행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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