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악산(母岳山)

 

모악산-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과 김제시 금산면 경계에 있는 산. 
높이 794m. 노령산맥의 말단부에 솟아 있으며, 주위에 선각산·국사봉 등이 있다.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모양의 바위가 있어서 모악(母岳)이라고 했다.  능선이 북동-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으며, 동쪽 사면을 제외한 전사면이 비교적 완만하다. 동쪽 사면에서 발원한 계류는 구이 저수지에 흘러든 뒤 삼천천을 이루어 전주시로 흐른다. 서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두월천·원평천은 동진강에 흘러들며, 김제 벽골제의 수원이 되기도 한다. 기반암은 중생대 쥐라기의 편마상화강암·석영반암·대보화강암 등으로 되어 있다. 예로부터 이곳에 금이 많이 생산되어 금산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지금도 주변에는 사금광산(砂金鑛山)이 몇 군데 있다. 또한 이 일대는 계룡산의 신도안(新都安), 풍기(豊基)의 금계동(金鷄洞)과 함께 풍수지리설에 의해 명당이라 하여 좋은 피난처로 알려져 있다. 한때 수십 개의 신흥종교 집단이 성행했으며, 미륵신앙의 본거지로서 용화교 등이 일어났다.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한국 거찰의 하나인 금산사(金山寺)를 비롯한 많은 문화유적이 있어 호남 4경의 하나로 꼽힌다.  1971년 12월 이 산과 주변지역 일대를 포함한 총면적 42.22㎢가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서쪽 기슭에 금산사가 있으며, 그 경내에는 금산사미륵전(국보 제62호)·노주(露柱 : 보물 제22호)·석련대(石蓮臺 : 보물 제23호)·혜덕왕사진응탑비(慧德王師眞應塔碑 : 보물 제24호)·5층석탑(五層石塔 : 보물 제25호)·석종(石鍾 : 보물 제26호)·6각다층석탑(六角多層石塔 : 보물 제27호)·당간지주(幢竿支柱 : 보물 제28호)·대장전(大藏殿 : 보물 제827호)·석등(石燈 : 보물 제828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또한 금산사의 출입구이기도 한 홍예석문(虹霓石門)은 임진왜란 때 왜적으로부터 절을 지키기 위해 쌓은 것이다. 귀신사(歸信寺)에는 대적광전(大寂光殿 : 보물 제826호)·3층석탑(三層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2호) 등이 있다. 그밖에 대원사·심원암·수왕사 등도 자리하고 있다.

 

 

△   [10시29분]  오  늘은 김제에 있는 모악산 산행을 하기로 한다

구이관광단지에 도착하니 날씨는 흐리고 벚꽃들이 우리를 반긴다

벌써 주차장에는 차들이 만차다 버스가 주차장 입구에

우리들을 내려놓고 우리는 서둘려 하차한다

10시29분에 모든 준비를 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지:전북 완주군 김제시 금산면

언제:2015.04.05일

누구와:대구드림산악회

산행거리:8.68km

산행시간:03시간34분

주요산행기점시간

☞구이관광단지주차장:10시29분

☞선녀폭포:10시36분

☞대원사:10시49분

☞수왕사:11시11분

☞무제봉:11시23분

☞모악산:11시41분

☞모악정:13시17분

☞금산사:13시36분

☞주차장:14시01분

 

 

 



 

모악산


내고장 모악산은 산이 아니외다

어머니외다

저혼자 떨쳐 높지 않고

험하지 않고

먼데 사람들 마저

어서오라 어서오라

내자식으로 품에안은 어머니외다

여기고스락 정상에 올라

저아래 바람진 골마다

온갖풀과 나무어진 짐승들 한핏줄이외다

이다지도 이다지도

내고장모악산은 천년의사랑이외다

오내마음여기두어

고은.시


 

 

 



 

△  좌측에 모태정을 지나고...

 


 

 



 

△  목교 성황당 다리를 건너고...


 

 

 



 

△  [10시36분]  선녀폭포에 도착하고...


선녀폭포와 사랑바위


먼 옛날 이곳 선녀폭포에서는 보름달이 뜨면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즐기며

수왕사 약수를 마시고 모악산의 신선대에서 신선들과 어울리곤 하였는데

어느 날 폭포 곁을 지나던 나무꾼이 선녀들의 아리따운 자태에 넋을 잃고

그모습을 잊지못해 병을 얻고 말았다

선녀들의 모습을 한번 만 더 보고 죽는 게 소원이었던 나무꾼은 보름달이 뜨자

폭포를 찾아와 선녀들을 지켜보던중 뜻밖에 한 선녀와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이들 두 남녀가 대원사 백자골 숲에서 사랑을 속삭이며 입 맞추는 순간

난데없이 뇌성벽력이 요란하게 울렸고 두 남녀는 점점 돌로 굳어지고 말았다

돌로 된 두 남녀의 모습이 마치 떨어질줄 모르고 열열한 사랑을 속삭이는 듯하다

해서 "사랑바위" 라고 부르며 여기에 지성을 드리면 사랑이 이루져 진다고 전해진다...


 

 

△  선녀다리도 지나고 이런다리를 4개나 지나야 한다...


 

 

 



 

 



 

 



 

 



 

△  대원사 백자골 계곡...


 

 

 



 

 



 

△  [10시49분]  대원사에 도착하고 여기서 경내를 한번 돌아본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670년(신라 문무왕 10) 일승(一乘)이 심정(心正)

·대원(大原) 등과 함께 창건하였다. 일승 등은 고구려 보장왕(재위: 642∼668) 때 백제에 귀화한 보덕(普德)의 제자들이다.

 이들은 모두 열반종의 교리를 익힌 뒤 보덕이 머물고 있는 고대산(孤大山) 경복사(景福寺)가 보이는 곳에 절을 짓고

 대원사(大原寺)라 하였다. 한때는 대원사(大圓寺)로 표기하였으나,

 현재는 대원사(大院寺)라고 한다. 1066년(고려 문종 20) 원명국사(圓明國師) 징엄(澄嚴: 1090∼1141)이 중창하였는데,

 이 때를 창건한 때로 보기도 한다. 1374년(공민왕 23)에는 나옹(懶翁) 혜근(惠勤)이 중창하였고, 1415년(태종 15)에도 중창하였다.



 



 

 

 



 

 



 

 



 

△  대원사를 지나 이제 다시 급 된비알이 이어진다

벌써 몸에서 땀이 무척 많이 난다

웃옷 바람막이옷을 벗고 출발한다 ...


 

 

  [11시00분]  한무리의 산객들이 쉼터에서 쉬고 있다 사각 정자도 보인다

날씨는 계속 운무로 인하여 조망을 볼수가 없다

저멀리 희미하게 구이 저수지가 보인다...


 

 

 



 

△  계속이어지는 급 된비알 바람도 불지않고 무척 덥다

오늘 산객들이 많이 보인다...


 

 

△  수왕사 갈림길 쉼터...


 

 

 



 

△  [11시11분]  조그만한 산사 여기서 약수 한잔 마시고...


수왕사


수왕사를 본래는 "물왕이절" 혹은 "무량(無量) 이절 이라 하였는데 한자 이름이 이루어

지면서 "수왕사" 라고 했다 수왕사는 680년 (신라 문무왕20년) 에 보덕화상(普德和尙)이

수도장으로 쓰기 위하여 창건한 것을 1125년 (고려인종3년) 에 숙종대왕(肅宗大王)의

제2왕자인 원명국사(員明國師)께서 중창하였다

그후 1597년(선조30년)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1604년 (선조37년)에 진묵대사께서

중건 하였으며 1951년 1월10일 6.25 당시 공비토벌 작전으로 소실된 것을 1953년에

천석진사(千錫振師)가 다시 지었다...


 

 

 



 

△  다시 수왕사 갈림길 쉼터 정자 위로 다시 등로는 이어진다...


 

 

 



 

 



 

△  [11시17분]  드디어 능선에 오르고 이제 바람도 제법 분다

쉼터에는 막걸리도 팔고 있다

간단하게 컵라면도 먹을수 있다...


 

 

△  모처럼 편안한 능선이 이어지지만 이내 끝난다...


 

 

△  [11시23분]  넓은 공터인 무제봉에 도착하고 사방 조망이 트이는 곳이나

안개와 운무로 인하여 몇m앞 조망도 트이지 않는다...


 

 

△  이제 계속 이어지는 나무데크길이 이어진다...


 

 

 



 

△  모악산 정상아래 전망터가 있다

 예전에 여기에 정상석이 있다던데 확인을 하지 못하고

정상으로 오른다...


 

 

 



 

 



 

 



 

  [11시41분]  송신탑이 있는 모악산 정상에 도착한다

운무로 인하여 사방 조망을 볼수가 없어 너무나 아쉽다

 정상에는 삼각점과 정상을 알리는 이정목이 있다

이제 정상을 개방하여 누구나 모악산 정상에 오를수가 있다...


 

 

△  다시 정상을 찍고 내려와 금산사 방향으로 내려선다

한동안 나무데크길이 이어진다...


 

 

△  넓은 공터에 도착하고 계속 내림이 이어진다...


 

 

△  다시 공터에 도착하고...


 

 

△  [12시06분]  암능 위에는 제법 넓다 여기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소나무와 암능이 너무나 아름답다...


 

 

 



 

  [12시54분]  점심을 먹고 내려서니 우측에 신선대라는 이정목이 있다

신선대가 어디지 지나온 점심먹던 자리가 이닌지...


 

 

 



 

 



 

△  [13시09분]  모악산 정상으로 물자를 나르는 케이불카 승강장 여기까지 차가 올라올수가 있다

이제 주차장 까지 시멘트 도로를 따라 내려선다...


 

 

 



 

△  [13시17분]  큰 정자가 있는 모악정에 도착하고 이제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 한다

산객들이 정자 안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  이제 좌측으로 계곡을 끼고 내려선다 약간의 소와 담이 보이고

그러나 보슬비로 인해 자꾸 카메라에 습기가 차서 사진이 뿌엿다...


 

 

 



 

 



 

 



 

 



 

 



 

△  금산사 부도탑...


 

 

 



 

 



 

 



 

△  [13시36분]  금산사에 도착하고 천년고찰 규모가 상당히 크다...


금산사


임진왜란 이전의 기록은 모두 소실되어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등을 인용하여 사적기()가 만들어졌는데,

 금산사의 창건은 599년(백제 법왕 1)에 왕의 자복()사찰로 세워진 것이라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지금까지 전하는 바는 진표()가 762년(신라 경덕왕 21)부터 766년(신라 혜공왕 2)까지 4년에 걸쳐 중건()하였으며,

 1069년(문종 23) 혜덕왕사()가 대가람()으로 재청하고,

 그 남쪽에 광교원()이라는 대사구()를 증설하여 창건 이래 가장 큰 규모의 대도량()이 되었다.
1598년 임진왜란 때 왜병의 방화로 미륵전·대공전(殿)·광교원() 등과 40여 개소에 달하는 산내 암자가 소실되었다.

 그러나 1601년(선조 34) 수문()이 재건하여 1635년(인조 13)에 낙성을 보았다.

 고종() 때에 이르러 미륵전·대장전·대적광전 등을 보수하고, 1934년에 다시 대적광전·금강문·미륵전 등을 중수하였다.
금산사와 인연이 있는 고승()은 혜덕왕사() 이외에도 도생승통()

·원명()·진묵()·소요()·남악() 등이 있다.
주요 건물로는 미륵전(국보 62)·대장전(보물 827)·명부전(殿)·나한전(殿)·일주문()·금강문(

보제루() 등이 있고, 석련대(:보물 23)·혜덕왕사진응탑비(:보물 24)

·5층석탑(보물 25)·방등계단(. 보물 26)·6각다층석탑(보물 27)·

당간지주(竿:보물 28)·석등(보물 828) 등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이 금산사는 일대가 사적 제496호로 지정되어 있다.



 



 

 

 



 

 



 

 



 

 



 

 



 

 



 

 



 

△  금산사에는 왕벚꽃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다...


 

 

 



 

 



 

 



 

△  모악산금산사 일주문을 지나고...


 

 

 



 

△  매표소를 지나고...


 

 

 



 

 



 

 



 

△  식당가를 지나고...


 

 

 



 

 



 

  [14시01분]  버스가 있는 주차장에 도착한다

운무와 안개로 인하여 조망을 보지못해 아쉽다

그래도 무사히 100대명산여든아홉번째 산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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